모든 일이 그렇겠지마는 글을 쓰는 일 역시 지나치리만큼 감정의 영역이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 하나로 하루가 채워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연필을 쥐는 행위 자체가 싫증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차라리 글을 쓰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활자를 나열하는 것 자체는 큰 어려움이 아니겠으나, 내 마음에도 드는 글을 일구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한 번 그런 마음이 들면 다시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오기 위한 적절한 계기가 필요했다(누군가는 그 계기를 영감이라 거창히 표현했다). 내겐 가파도가 그랬다. 그곳에서 난 고집불통이던 마음을 풀기에 충분한 반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내 마음에도 꼭 드는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오후를.
초록과 파랑
초여름날의 가파도는 아름다웠다. 거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초록과 파랑이 그 전부를 이루고 있던 섬. 생기 넘치는 청초한 여인 있다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찬찬히 걷고 싶은 밭길 사이론 막 베인 풀에서 날 법한 향이 났다. 인상 깊은 풍광에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그러다 어느 선에선 내려놓게 되었다. 사진이 기억을 저장해준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마음에 담고 나서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가파초등학교
시간이 지나자 생각은 자연스레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로 옮겨갔다. 매일 아침을 이곳에서 맞이할 수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근사한 일일 텐데.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니 낮은 담 뒤로 초등학교 하나가 보였다. 다섯 그루의 야자나무와 앙증맞은 크기의 돌하르방이 이곳이 제주임을 방증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만큼이나 순수함이 묻어나는 장소가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줄어드는 입학생에 입학식 없는 개학식이 있었단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the bom volume 05 <Classic Summer> '오후의 일기, 가파도' 중에서
글/사진 라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