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는 김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김아도(阿都)를, 아도는 김수류(首留)를, 수류는 김욱부(郁部)를, 욱부는 김구도(俱道)를, 구도는 김미추(未鄒)를 낳았다. 김알지(閼智)의 7세손인 미추가 262년 신라 13대 미추왕(味鄒王)에 올라서 신라의 김씨 왕조가 시작되었다. 신라는 총 56명의 왕중에 김씨가 38명이다. 대종인 경주 김씨는 조선시대까지 총 600여개의 본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약 270여개 본관만 남아있다.
이중에서 신라 29대 무열왕(武烈王)의 5세손인 김주원(金周元)을 시조(始祖)로하는 강릉 김씨,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아들인 김흥광(金興光)을 시조(始祖)로하는 광산 김씨, 신무왕(神武王)의 후손인 김영이(金令胎)를 시조(始祖)로하는 영산(永山, 영동) 김씨,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 김선궁(金宣弓)을 시조(始祖)로 하는 선산(일선) 김씨, 문성왕(文聖王)의 5세손 김락(金樂)을 시조(始祖)로 하는 당악(唐岳) 김씨 등을 제외한 대부분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들이다.
경순왕(敬順王 : 김알지의 28세손)은 후백제 견훤이 경애왕을 죽게한뒤 왕위를 오르게하였으나, 935년에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사심관(事審官)으로 여생을 보냈다. 경순왕의 9아들중 첫째 아들 김일(鎰)과 김굉을 제외한 7아들은 낙랑공주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9아들중 마의태자로 잘알려진 김일은 망국의 한을 품고 개골산(愷骨山 : 금강산)으로 입산(入山)하였다.
첫째 김일(鎰)은 부안 김씨, 둘째 김굉의 아들(김운발(金雲發))은 나주 김씨, 셋째 김명종(鳴鐘)은 경주 김씨 의 영분공파, 넷째 김은열(殷說)은 경주 김씨 은열공파, 다섯째 김석(錫)은 의성 김씨, 여섯째 김건, 일곱째 김선(鐥)은 언양 김씨, 여덟째 김추(錘)의 아들(김위옹)은 삼척 김씨, 아홉째 김덕지(德摯)는 울산 김씨 등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넷째 아들 김은설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으며, 둘째 아들-구안동, 5세손 김봉기(鳳麒)의 넷째 아들-김녕, 후손인 김방경의 넷째 아들-대구, 7세손-도강, 13세손-밀양, 5세손-서흥, 후손-안악, 후손-안산, 14세손-야성(영덕), 김녕에서 분관-양근, 9세손-양주, 후손-연주, 4세손-영광, 후손-영산(靈山), 15세손-월성, 8세손-전주, 첫째 아들 김정구의 11세손-청풍, 등이다.
기타 첫째 아들 김일(鎰)은 후손은 통천, 여덟째 아들 김추의 아들 김우(金佑)는 희천, 여섯째 아들 김건의 후손은 영월, 홍주, 김알지계 김씨에서 다른 성(他姓)으로 갈려간 성씨는 김행(幸)이 안동 권씨(權氏), 김순식(順式)은 강릉 왕씨(王氏), 김궁예(弓裔)의 후손 김순백(珣白)은 광산 이씨(李氏)로, 세광은 감천 문씨(文氏), 김은열(殷說)의 13세손 김영규(永奎)는 수성 최씨(崔氏) 등으로 각각 개성(改姓)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