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예술이고, 삶을 변화시킨 것은 창조였다.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그 창조의 맨 앞에 예술이 있다. 예술과 사회와 삶은 별개가 아니다. 예술의 위대성이 창조에 있듯이 삶의 위대성도 창조에 있다. 창의적이지 않은 작품이 외면당하는 것처럼 창의적이지 않은 삶은 버림받는다. 이 책은 뼈아픈 시간을 걸어 나와 빛 아래에 우뚝 선 창조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당한 자존심으로 스스로의 삶을 명작으로 만든 미켈란젤로, 춥고 아프고 배고픈 방랑 속에 영롱한 시를 유산처럼 남기고 떠난 랭보, 진정으로 가슴이 원하는 삶을 살았던 피카소, 늦깎이로 시작해 10년 동안 그림의 모든 것을 보여준 고흐, 자신의 불행마저 멈추게 만든 작가 카프카, 일생을 바쳐 그리워할 것을 찾았던 버지니아 울프, 별이 되고 싶었던 조약돌 앤디 워홀, 고독과 절망을 위대한 노래로 엮어낸 비틀스, 창조와 재생과 구원을 소망했던 시인 엘리엇 등 20여 명의 예술가들의 혼신을 다한 창조적 삶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묻고 있다.
오늘날 모두가 교육에 열을 올리지만, 거기에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자신의 길이 아닌 곳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현대 교육은 대량과 속성을 위주로, 이미 만들어져 있는 방법들을 빨리 외우게 해서 빨리 써먹기를 강요한다. 인문이 빠져 있으므로 삶의 행복은 대충 넘어가게 된다. 인류의 문화, 인륜의 질서를 헤아리는 공부인 인문 속에 인간을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들어 있다. 창조적인 사람들의 삶은 곧 인문이다. 인문을 모르는 삶은 목표한 바를 얻었더라도 창조적으로 쓰지 못하게 되며, 그것은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스스로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대단한 성취일지라도 정작 자신에게는 고통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얻는 창조적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창조적 인물들은 인생의 방향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대단한 생의 승부사였다. 모두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영혼들이다. 그야말로 모두 가슴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생의 시련은 곧 에너지였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삶을 가져다준다면 시련 정도야 부딪쳐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가난도 불행도 열등감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시련이 삶을 분발하게 만드는 고마운 스승인 셈이었다.
책은 창조적 인물들의 어린 시절도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체험은 일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확인되지 않은 신화적 요소는 제외했고, 사실에 충실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일이 나이와 연도를 밝혔다. 역사 속의 큰사람들은 별종처럼 느닷없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거칠고 험한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 6년 동안의 방대한 자료 추적을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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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점화하여 창조의 높은 자리에 우뚝 선 이들의 이야기다. 재능이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의 재능은 타고난다. 그것이 세상의 밝은 빛이 되기 위해서는 불씨를 찾아내어 불꽃을 일구고 기름을 부어줘야 한다. 땅속에 아무리 값진 금광석이 묻혀 있더라도 캐내어 제련하지 않으면 흔한 돌산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천재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재능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다. 자기 자신을 믿으며, 외롭고 고독한 방황과 방랑 속에서 마침내 스스로 위대한 불꽃이 된 사람들이다.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는 석공의 아내인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돌과 끌과 정이 아이의 장난감이었다. 가난한 아버지는 아들이 돈이나 잘 벌어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를 바랐다. 석공은 화가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으나 소년은 돌이 좋았다. 자연 속에 갇혀 있는 생명을 자기 손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다. 귀족으로부터 주문받은 것들을 열심히 조각했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손에서 망치를 놓는 때는 잠자고 먹는 시간뿐이었다. 천정화도 그리고 벽화도 그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누구에게나 당당했다. 거기까지 닿은 이유는 거기까지만 갔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 그는 유일무이한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가 되었다.
제노바 허름한 골목의 낡은 집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놀았다. 부두 노동자인 아버지는 아이가 어서 바이올린을 배워서 생계에 보탬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아이가 빈틈을 보이면 매질에다 밥도 주지 않는 맹훈련을 강행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아이는 스스로 악기에 충분히 매료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는 이도 있었고, 옷을 찢는 이도 있었다. 아픈 사랑이 그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 악마인지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세상을 떠났을 때, 교회는 그가 악마이므로 땅에 묻지도 못하게 했다. 그는 그저 바이올린밖에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었음에도 말이다.
프랑스 북동부 지방에서 태어난 시인 랭보는 집 나간 아버지 대신 엄해진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얻어맞고 벌서기를 반복하면서 반항적 기질이 자연스레 커졌다.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소년은 탈출을 꿈꾸었다. 책 속에서 찾아낸 것은 시였고, 평범한 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좋은 시인들이 많이 산다는 파리로 무작정 상경하기를 여러 차례. 무임승차로 걸려도, 혁명군에 붙잡혀도 괜찮았다. 모두 시가 되는 고마운 체험이었다. 소년의 눈에 파리의 시인들은 시인도 아니었고, 그런 시인들의 눈에 소년은 문제아일 따름이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길거리에서 잠을 잤다. 오직 시만이 지상 최대의 가치였다. 멸시와 치욕 속에서 소년은 최고의 시인이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던 프라하에서 태어난 시인 릴케는 외롭고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게 된 군사 교육은 아이를 아프게 했다. 소설책을 읽으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강제에 의해 법률 공부를 하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작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조건으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방랑의 길이 시작되었다.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었고, 자기 손으로 시집을 펴냈다.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났으며, 마음이 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집을 만들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거처가 곧 집이었다. 그는 독일 시를 처음으로 완전하게 만든 귀중한 릴케였다.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활동한 피카소는 두 나라가 서로 자랑하는 화가이다. 아버지가 미술 교사였으므로 아이는 붓과 팔레트 곁에서 자랐다. 재미없는 외우기를 강요하는 학교보다 들판의 신비한 풍경이 더 좋았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그림에 매달렸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이의 창조성을 칭찬해주었고, 어머니는 아이의 욕망을 부추겨주었다. 이미 유명 화가처럼 그릴 수 있게 되었으나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낡고 오래된 것을 반복하는 것은 창조가 아니었다. 그는 보다 크고 넓은 미술이 있는 파리로 갔다. 고독과 결핍이 그를 풍성한 정신세계로 안내했다. 자신을 해체하고 다시 건립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의 그림은 일기였고, 그의 삶은 미술 그것이었다.
홍영철 지음 |북스넛